병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치료로 인한 고통으로 지쳐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견디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러한 믿음의 대표적인 것이 종교이다. 가족이 불교다 보니 어려서부터 종종 절에 다녔고 불경을 읽기도 했지만 나는 무교에 가까웠다. 투병기간이 길어지며 마음이 점점 무너져감을 느꼈고 최근에는 불경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도 모르게 종교에 조금씩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종교는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꽤 오랫동안 누워 생활하는 환자이다. 잠을 많이 자기도 하지만 깨어 있을 때도 침대에 기대어 뭔가를 하며 가까운 화장실만 왕복하는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이 묻기를 '안 심심해?', '지루하지 않냐?', '산책이라도 하지!' 그 때마다 나는 뭐라고 답해야하나 당황스럽다. 지금 내 상태에서 깨어있을 때는 뭐라도 하려고 침대에 기대서 하는 것인데, 그나마 다시 피곤해지면 잠에 곯아 떨어지는데 지루하지 않냐니? 역시 사람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긴 힘든가 보다. 내가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는 두 가지 중 한 경우일 것이다. 치료가 오래 진행되면서 차도가 어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치료만 계속 진행되어 화가 난 경우(몇 번 경험해 봤는데 미칠 것 같음)나 컨디션이 좋아져서 병원 생활이 지루해질 때 일..
어제는 척추에 시술을 했다. 방사선 치료로 강도가 약해져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 뼈에 주사바늘을 찔러넣고 시멘트라는 것을 주입하여 뼈의 강도를 보강해주는 치료이다. 몇 개월 전에도 이 시술을 했었다. 전신마취가 아니기에 시술 중 통증이 있을 수 있는데 지난 번에는 거의 고문 수준이었고, 그 기억때문에 더 긴장되었다. 훨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이동해 차례를 기다리며 내가 쓸 약재를 받고 머리에는 수술두건을 썼다. 잠시 뒤 이동 침대에 누워 수술실 안으로 입성, 추위가 느껴졌다. 수술실은 장비들 때문인지 다른 곳보다 춥다. 거기다 속옷도 없이 환자복만 입고 와서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잠시후 간호사의 도움으로 이동침대에서 수술대 위로 옮겼고, 수술대에 엎드려누워 내 몸에 설치되는 장비들과 미리 연결..
입원해있으면 간호사들이 3시간에 한 번 정도 바이탈을 체크하다보니 깊게 자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입원하면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잔다. 오늘 새벽에도 바이탈 체크때문에 깼다가 잠들지 못하고 누워있는데 인근 병실에서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야, 아야! 여자 목소리였다. 많이 아픈데 검사를 위해 자리를 옮기다보니 그 과정에서 고통스러워하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보니 그러려니하고 있는데 그 목소리가 끊이질 않아 좀 더 집중해서 들었다. '아야'가 아니라 '아이고' 였다. 누군가 죽은 것이었다. 죽음을 접하면 기분이 참 묘해진다. 투병기간이 꽤 길었고 앞으로 치료 선택지도 얼마남지 않은 나에게는 남의 일 같지 않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그 시간동안 내가 어떤것을 할 수 ..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암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 많은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지금 겪고 있는 신장암이 희귀병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는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내 치료 상황에 대해서 글을 남기고 있다. 여러 암관련 카페에 가입하고 자료를 찾을때마다 환자와 그 가족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장사치들의 글이 많아 실망을 한다. 혹시나 새로운 정보가 있을까 접속하면 역시나, 정신적으로 피곤해진다. 다행히 신장암 관련해서는 다음에 좋은 카페가 있다.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활동도 활발하다. 항암치료하는 동안 담당 주치의나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지만 도움이 되는 많은 정보를 이 카페에..
이제는 너무나 오랫동안 함께했기에 약한 통증은 늘 함께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올 줄 모르는 강렬한 통증때문에 늘 긴장하고 지낸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그 순간의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운전도 포기했다. 나는 다른 환자들에 비하여 심각한 상황은 아니어서 약한 마약성 진통제 하나, 신경 진통제 하나 그리고 타이레놀과 비슷한 진통제 하나를 하루 두 번 복용한다. 이 약들을 먹는다해서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효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가끔 졸다가 혹은 복용하는 약이 많다보니 진통제 먹는 걸 잊을 때가 있는데, 몇 시간 내에 지옥 입구에 도착했음을 몸으로 직접 느낀다. 지금 먹는 약들이 강력한 진통제들은 아니기에 먹고서 약효가 발휘되려면 삼십분에서 한 시간 정..
2018년 12월 31일, 가족들과 함께 2018년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몸이 바닥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에 모든 것을 멈추고 꼭 먹어야하는 중요한 약에 대해서 가족들에게 부탁한 후 침대로 뛰어들었다.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고는 바로 잠이 들었다. 극심한 통증에 잠에서 깨자마자 진통제를 찾아서 먹었다. 처음에는 마약성이라는 말에 꺼려졌지만 이제는 없이는 못산다. 진통제 하나로 안되어 신경진통제, 일반진통제까지 먹고서 시간을 봤더니 12시 3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내가 불쌍하다 느껴지지만 12시 3분의 나는 빨리 약이 퍼져서 통증이 줄기를 간절히 바랄뿐이었다. 통증때문에 한 해가 가는 것도 새로운 해가 오는 것도 몰랐던 나에게 힘내라고 올해는 잘 될거라 전하고 싶다.